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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져도 나는 영원히....

괴테가도를 타고 바이마르까지 본문

나의사진첩

괴테가도를 타고 바이마르까지

素美 2012. 5. 30. 16:35

이번 여행에서는 독일의 음악가 및 대문호의 생애를 짚어보는 것을 주요 코스로 설정하여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구 동독의 도시가 포함된 괴테가도는 괴테의 발자취가 깊이 밴 도시를 차례로 돌아보는 것인데 격동의 역사를 가진 과테의 생가가 있는 프랑크푸르트 에서 출발하여 괴테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괴테가도의 하이라이트인 바이마르, 젊은 시절 과테가 공부한 라이프찌히등을 둘러보는 코스를 지나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 출발부터 차가 고장이 나기 시작하면서 전체일정이 꼬이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차를 교체하여야 하는데 토요일이라 대부분이 노는 날이라 난감하였습니다

 

그럭저럭 12시 경에 차가 준비가 되다보니 일정상 일부 지역은 안타깝게 그냥 지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7년전 브레멘에 다녀올때는 그당시 춥고 스산한 기억이 많이 있었는데 금번 독일여행의 경우 차를 타고 이동을 하다보니 거리에 숲이 우거지고 유채꽃이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볼때 프랑스하면 항상 가져왔던 온화한 이미지와 독일하면 웬지 스산한 느낌의 이미지가 독일 도시자체가 조용하면서 온화하고 깨끗한 느낌이 많이들었습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이 없는 넓은 평야는 정말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들르지 않고 바로 아이제나흐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바하가 태어나고 루터가 공부한 곳이라는 구 동독지역의 아이제나흐에 들러  델파이라는 식당에서 현지식을 먹었습니다. 구 동독지역이여서 인지는 몰라도 구 서독지역에 비해 발전정도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새우 ,감자, 생선등요리로 점심을 먹고나니 3시가 넘었습니다 .

늦어도 4시까지는 바이마르로 가야  괴테가 기거하던 집에 들어가보기도 하는 데 현실적으로 아침에 너무 늦게 출발한 관계로 아니제나흐에서의 일부관광도 취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이마르 아트리움 광장에는 거의 5시가 다 되어 도착하였는데 바이마르는 인구 6만명의 소도시로 18세기에 괴테를 중심으로 문학 음악등ㅇ에서 이름을 떨친 위인들이 살았으며 1919년 독일 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인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된 도시이기도  합니다

 

 

먼저 광장에 내려서 바이마르의 여행 안내자의 안내에의해 간곳은 쉴러와 괴테 부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때 책에서 한번은 나와야 우리에게 친숙한데 쉴러는 "군도" 및 "빌헤름텔"을 쓴 교과서에도 자주나오는 유명한 독일의 극작가인데 이곳은 쉴러의 무덤이 있는 입구인데,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실질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3명이상의  유전자가 나왔다고 하는 군요    

 

안에 들러가지 못하게 철망이 쳐져 있는 데 철망사이로 사진을 찍엇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독일의 회화의 거장인 루카스 크라나흐의 무덤이 같이 있었습니다  루카스는 루터의 초상화를 그린것으로도 유명한데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루카스는 파리 룹브르 박물관에서  3여신 (The Three Graces) 라는 1531년에 그린 누드화를 구매하기위해 일반인의 모금을 한것으로도 유명한 와가이기도 합니다

 

루카스의 묘지 바로 앞에는 괴테부인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 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젲대로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는 데 오빠가 괴테에게 청탁편지를 보내는 심부름을 갔다가 괴테와 만나 사랑에 빠져 들었다고 합니다

 

1788년 크리스티아네의 나이는 23세이고 괴테의 나이는 41세였습니다. 괴테는 일생동안 9명의 여자와 애정관계가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결혼한 사람이 크리스티아네 입니다

 

괴테와 크리스티아네는 만나자 마자 바로 동거를 시작하여  1년후 장남 아우구스트가 태어나고 18년동안 동거인으로 살아가다  1806년 정식으로 결혼을 하였고 이후 크리스티아네 본 괴테가 사망한 1816년까지 결혼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 조금난 걸어가면 큰광장이  나오는 데 괴테광장이라고 하며 카페의 이름도 괴테카페입니다

 

이곳을 지나가면 쉴러와 괴테가 함께있는 동상이 만들어져있는데 왼쪽의 괴테가 월계수 관을 들고 있고 쉴러가 이를 잡으려고하는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가니드가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쉴러의 거리에 들어오면 쉴러가 살던 노란색의 집이 있었습니다. 쉴러는 1802년 43세의 쉴러는 괴테의 권유로 바이마르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1805년 죽을때까지 이곳에서 살았으며 명작 빌헤를 텔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고 합니다.현재는 박물관도 있어 다수의 자료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문닫는 시간이 6시까지 여서 들어가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쉴러의 집을 지나 조금더 걸어가면 바이마르공국의 재상를 하고 있었던 괴테의 집이 나옵니다 괴테가 1782년부터 죽을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그의 색채론을 기초로한 컬러풀한 벽과 수많은 도서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하나 쉴러의 집과 마찬가지로 외벽은 노란색으로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되 바이마르 공국 재상의 집이여서인지 외형상으로도 매우크게 보였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도 바이마르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이집이 바하가 살았던 집이라고 합니다

 

 

바이마르공국이 독일의 문화중심지로 떠오른것은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안나 아말리아는 1756년 바이마르공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와 결혼한후 아들인 카알 아구스트가 태어난지 8개월만인 결혼후  26개월만에  남면이 사망하고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도서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1691년에 설립되어 2004년 화재발생후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괴테의 파우스트 초판본과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성경과 흄볼트의 여행기등 독일의 희귀문화작품 3만여권이 소장되어 있는 세게에서 가장아름다운도서관중에 하나라고 도 합니다.

 

 

바이마르공이 살았다는 바이마르성은 바이마르성은 16세기 고전주의적 4층 건물인데 화재로 소실되어 1803년에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탑과 고딕양식의 바스티유라고 불리는 건물은 중세시대의 것이라고 합니다 

 

 

항상 어디가더라도 사진을 찍어 꼭 인증샷을 날리는 모습에서 나는 100% 한국인인듯.............